메타버스에 희소성은 왜 필요한가?

메타버스는 기존의 물리적 법칙과 경제적 제약을 넘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닌가? 그렇다면 자원의 결핍을 유발하는 '희소성'이라는 개념이 없어야 하는게 아닐까? 아직 '이것이야 말로 메타버스다'라고 부를만한 제품이 없는 상황이라 메타버스에 대한 개념적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아주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메타버스에서는 희소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래에는 다양한 가상세계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가상세계가 공적(Public)이냐 사적(Private)이냐 하는 것일 것이다. 가장 공적인 가상세계는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네트워크를 사용하여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누구도 데이터를 위변조 할 수 없는 세계가 될 것이다. 반면에 가장 사적인 가상세계는 개인 PC 위에 구축되고 관리되어 소유자의 입맛대로 모든것을 바꿀 수 있는 세계일 것이다. 이는 탈중앙화라는 개념처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고 스팩트럼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비유하자면 네오가 처음 모피어스의 전화를 받는 공간은 공적인 가상세계이며, 모피어스가 네오를 가르치기 위해 데려간 격리된 임시공간은 사적인 가상세계이다.
네오가 매트릭스에서 깨어나기전에 전화를 받는 이 공간은 공적인 가상세계로서 메타버스에 해당
모피어스가 신참 네오를 교육시키려고 데려간 격리된 가상공간은 사적인 가상세계
사적인 가상세계는 말하자면 치트키를 쓸 수 있는 PC 게임과 비슷한 것이다.
기분 따라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정의하고 아바타를 바꾸어가며 사용할 것
유명인들의 아바타(또는 실제얼굴)도 스스로 사용하고, NPC에 입히는 등 초상권의 개념이 없을 것
화폐의 개념도 큰 의미가 없음. 원하는대로 무엇이든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
허가된 소수의 인원만 참여하는 세계이므로, NPC들과의 상호작용이 주요 콘텐츠가 됨
무한한 자원과 권한을 누리므로 그야말로 신이 되는 재미
반면에 치트키를 사용한 게임과 같아서 지속가능한 재미를 만들어내기 어려움
해당 공간에서의 활동이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는 활동으로 취급되기 어려움
공적인 가상세계는 현실세계의 디지털 대응물, 즉 메타버스이다.
물리세계의 화폐(즉, 법정화폐)와 서로 교환될 수 있는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물리세계와 동등한 지위를 누림
정체성과 이를 표현하는 아바타를 자주 바꾸면 브랜드 내지는 사회적 영향력이 잘 쌓이지 않기 때문에 경제활동에 불리함. 즉, 정체성과 아바타를 최대한 연속성있게 관리하려 할 것
아바타를 꾸밀 수 있는 자원조차도 희소하기 때문에 투자를 적게한 뉴비들은 흔하고 다소 볼품없는 자원들로 아바타를 구성하고, 투입하는 자원(시간, 돈)을 늘려감에 따라 그 고유성과 심미성이 증가하게 될 것
즉, 아바타만 보더라도 그 사람의 경제적 수준이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추리가 가능할 것
희소한 자원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법칙과 시점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사회조직과 서사가 발달하기에 용이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거나 배신을 당한다면 이것은 실제 영향력의 손해나 경제적인 손실로 이어지므로 '전쟁과 승리', '배신과 복수'와 같은 서사에 몰입하게 됨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연스럽게 '조직'을 형성하며 사회를 이루게 됨
위와같은 개인적인 전망이 맞다면, 공적인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서는 희소성이라는 개념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가 치트키를 쓰고 플레이하는 온라인게임처럼 될 것이고, 몰입감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서사와 사회조직이 발달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